1. 주요 인물과 배경
가족치료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머레 보웬은 다른 가족치료 선구자들과는 달리 핵가족의 영향뿐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가계의 영향을 특히 강조했다. 보웬은 의사로서 정시의학을 공부하였다. 보웬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아 왔으나, 1940년대부터 환자를 치료하면서 환자의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0년대 초반 캔사스의 토페카에 있는 메닝거 클리닉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할 때,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치료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서 보웬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어머니에게 미해결 된 공생적 애착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모자-공생'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메거닝 클리닉의 전통적인 치료 분위기 때문에 1954년 국립정신보건연구소로 자리를 옮겼고, 여기서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입원시켜 연구하였다. 이때 환자와 어머니 사이에서만 정서적 '융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도 정서적으로 융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보웬은 1959년 국리벙신보건연구소의 프로젝트를 끝낸 후, 장애가 그리 심하지 않은 가족에게까지 연구를 확대했다. 이 연구 과정에서 정신분열증 환자 가족에게서 발견했던 기제가 일반 가족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정상적인 가족과 병리적인 가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족이든 정서적 융합과 분화라는 연속선상의 한 지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보웬 은 1990년 오랜 병고 끝에 사망하였는데, 가족치료 분야에서는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히는 동시에 가족 뛰어난 가족치료 이론가로 활동했던 인물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보웬 가족체계치료는 가족치료를 배우는 전 세대에 영향을 미쳤으며, 보웬은 가족치료운동의 지도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보웬 이론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발전되고 계승되어 오고 있다.
2. 주요 개념
보웬은 현재 가족 구성원들의 삶에 원가족이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고 있으며 가족을 하나의 체계로 간주하고 인간의 삶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체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부모와 해결되지 못한 정서적 문제가 현재 우리 가족 내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발생하는 증상은 과거 부모와의 미해결 된 정서적 문제의 반영이며, 이 또한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다.'
보웬에 의하면 개인이든 가족이든 '정서적 체계'와 '지적 체계'라는 2가지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두 체계 간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보웬은 가족을 하나의 정서적 단위요 서로 맞물린 관계방으로 간주했고, 여러 대(代)를 통해 분석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은 정서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체계이다. 가족 간에 불안이 발생하면 가족들은 지적 체계에서 벗어나 정서적 체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가족을 정서적 관계체계로 간주하는 보웬 가족체계이론은 상호 연동적인 8가지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1) 자아분화
보웬의 가족체계이론의 초석을 이루는 개념인 '자아분화'는 정신내적인 개념인 동시에 대인관계적 개념이다. 개인의 정신내적 측면에서의 분화란 사고와 감정을 분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아가 분화된 사람은 불안이나 스트레스에 직면하더라도 지적 과정과 감정 과정을 분리시켜 정서적 충동의 지배를 덜 받는다. 게다가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자동적으로 정서적 충동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주관에 따라 사고하고, 계획하고, 반응할 수 있다. 자아가 분화된 사람은 타인의 정서적 압력에서도 융합을 이루지 않고, 객관적 입장에서 현명하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간다.
자아분화가 이루어지려면 자랄 때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전혀 분리되지 못하면 부모와 공생관계에 놓여 혼자서 일어설 수 없다. 그러나 자아분화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정서나 감정을 완전히 배제 시키고 합리적 행동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아 분화란 감정과 인지의 적절한 균형을 말한다.
(2) 삼각관계
가족체계이론에서는 개인 또는 관계 내에서의 정서적 긴장을 강조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가족관계에서든 어느 정도 삼각관계가 존재한다. 삼각화란 두 사람 간에 긴장이 발생할 때 제삼자를 끌여들여 이를 완화시키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부부의 자아분화 수준이 낮을수록 정서적 충동에 따라 반응하기 쉽기 때문에 서로 만족시킬 만큼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삼각관계를 맺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안이다.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긴장이나 불안이 발생하지 않을 때에는 그 관계가 안정을 이룬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 바깥에서 스트레스에 봉착하여 불안이 심해지면, 두 사람의 관계가 불안정해져 제삼자를 끌어들여 안정을 되찾으려는 경향이 높아진다.
(3) 핵가족의 정서 과정
보웬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아분화 수준이 비슷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자아분화 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기 원가족과 분화가 덜 이루어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부부의 자아분화 수준이 낮을 수록 부부간에 정서적 융합이 더욱 심해져, 과거 자신들의 원가족과 겪었던 것과 같은 특징을 드러내기 쉽다.
핵가족의 정서 과정은 앞으로 살펴보게 될 누대의 전수 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자아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자아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의 가족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가족과의 상호작용 유형을 변화시켜야 한다.
(4) 가족투사 과정
가족투사 과정은 부모가 자신의 자아분화 수준을 한명 또는 그 이상의 자녀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동등하게 대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녀마다 분화 수준이 다르다. 보웬에 의하면 자아분화 수준이 낮은 부모는 출생 순위와 관계 없이 자녀 중에서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자녀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 과잉 관여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부모의 미성숙에 가장 많이 노출된 자녀일수록 다른 형제들보다 가족과의 융합이 심하고,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분리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투사 과정의 강도는 부모의 미분화 또는 미성숙 수준과 가족이 경험하는 정도에 달려있다.
(5) 누대의 전수 과정
보웬은 핵가족 뿐만 아니라 윗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累代'의 전수과정을 제시했다. 누대의 전수과정이란 한 가족의 만성적 불안이 여러 대에 걸쳐 전수된 결과 심각한 역기능이 발생하게 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누대의 전수과정을 이해하려면 앞에서 다룬 2가지 개념, 즉 자아분화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한다는 사실과 자아가 분화되지 못한 가정에서는 가족투사 과정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6) 형제자매들 사이에서의 위치
노먼은 성격적 특징이 출생 순위, 성비, 형제자매의 수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토먼의 연구는 기능의 늑징을 기술했지 기능의 수준을 기술한 것은 아니다.
(7) 정서적 단절
가족투사 과정에 연루되지 않은 자녀는 부모와 달리 자아분화 수준이 높아서 부모와 융합을 이루지 않고 감정과 사고가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부모와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가족투사의 대상이 된 자녀는 자아분화 수준이 낮아 부모와 심한 융합을 이룬다. 부모와 융합이 심한 자녀일수록 나중에 부모와 정서적으로 단절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원가족과 정서적으로 단절하려는 사람은 부모와의 융합에서 벗어나려는 절망적 노력을 나타낸다. 정서적 단절은 부모나 형제와 신체적 · 정서적 거리를 둠으로써 관계를 단절하려고 해도 이러한 정서적 과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화된다.
(8) 사회적 정서 과정
보웬 이론에서 가장 늦게 등장한 사회적 정서 과정 또는 사회적 퇴행이라는 개념은 보웬이 자신의 사고를 사회 내에서 작용하는 정서과정으로 확대시킨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자아분화 수준이 낮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과정이 사회 내에서도 발생하며, 이러한 현상이 가정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족의 자아분화 수준이 낮을수록 사회적 정서 과정의 영향을 더욱더 받게 된다. 개인이나 가족의 자아분화 수준이 높을수록 이러한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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